제 목 | ![]() |
소극장 '돌체' | 조회수 | ![]() |
8492 | |||
글쓴이 | ![]() |
ClownMime | 등록일 | ![]() |
2017.06.27 | |||
http://blog.daum.net/alzade57/11795116 출처 미추홀 - 소극장 '돌체'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신극사(新劇史)의 산 증인 안종화 선생은 유저 '신극사 이야기'에서 "인천의 독립협회 회원 김봉의씨가 1912년 혁신단을 협률사로 초청했고 그 때 김봉의 씨의 개명 부탁을 받은 임성구 단장이 협률사를 축항사(築港舍)로 개칭했다."고 전한 바 있다. 협률사는 1895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공연장이었고 임성구 일행이 공연한 신파극 '육혈포 강도'는 인천 신연극의 효시였다. 협률사는 후에 축항사, 활동사진 전문관 "애관(愛館_1925년)"으로 개명, 개축된 뒤에도 연극 공연장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 무렵 정통극을 지향하는 토월회(土月會)의 영향아래 탄생한 인천 최초의 극단 '칠면구락부 (七面俱樂部)'도 1926년 애관에서 춘향전을 공연했었다. 이 때 참여한 이는 극작가 진우촌, 함세덕 연기자 정암, 무대 장치가 원우전, 임영균, 고일, 송수안 등 이었다. 광복되던 해에는 극단 '고향'이 창단됐다. 그해 10월 17,18일 이틀 동안 '고향'은 애관에서 '피를 파는 사람들'과 '명상' 등을 공연했다. 그 후에도 인천의 여러 극단은 주로 애관을 무대로 공연해 왔다. 연극 전용 소극장이 비로소 탄생된 것은 1979년이었다. 중구 경동 인천기독병원 앞 반 지하 50여 평의 공간에 무대와 객석을 마련한 '소극장 돌체'가 그것이었다. 최규호, 박상숙 씨는 지난 28년간 이 무대를 어렵사리 지켜온 연극인 부부로 그들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는 인천연극사에 길이 기록되리라 믿는다. 또한 폐관 위기에 처한 소극장 돌체를 지상 4층 120평 규모의 최신 복합 공연장으로 부활시키는데 앞장선 홍미영 국회의원에게도 따뜻한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 언젠가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했던 추억이 아련한데, 이전에 즈음해 '고도를 기다리는 광대들'을 문학동 무대에 올리고 있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