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광대의 인사최규호의 클라운 마임 공연

이재상(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한때 ‘우리들의 광대’라 불리던 최규호가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작은극장돌체, 2021.4.20.~4.24.)으로 3년 만에 공연을 한다 해서 공연장을 찾았다. 필자는 그의 후배로 82년 겨울 처음 그를 만났으니 근 40년을 알아온 셈이다.

그는 국내에 저글링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80년대 후반부터 ‘클라운 마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판토마임과 저글링 그리고 광대의 익살스러움을 뒤섞은 독특한 마임세계를 선보여 왔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초 인천에서 세계 최초로 ‘클라운 마임 축제’를 개최했고, 지금도 가을이면 온 세계에서 클라운 마임을 하는 마임이스트들이 인천을 찾는다. 한마디로 그의 클라운 마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꽤나 유명하다.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 작은극장돌체, 2021.4.20.~4.24.(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그렇다고 그의 마임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천국과 지옥’같은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무겁게, 혹은 익살스럽게 다루기도 했으며, 일상의 여러 모습을 익살스러우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하고는 했다. 그래서 늘 그의 작품은 웃음 속에 숨은 페이소스(파토스)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임은 대부분 전 연령대가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광대의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광대’가 되었다.

그가 10여 년 전 우리 앞에서 돌연 사라진 것은 사고에 의해서였다. 여느 때처럼 공연 막바지, 7개의 의자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서 공연을 마친 후 내려오던 중, 갑자기 한 아이가 뛰어든 것이다. 그는 그 아이를 피해 무리하게 착지했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의 공연을 볼 수 없게 됐다. 3년 전 공연은 외국에 있던 탓에 보지 못하였으니 이번 공연은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10여 년 만의 공연이자, 그의 공연 중단 후 처음 보는 공연인 셈이다.

첫 번째 작품 <먹고 삽시다>(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공연은 50분가량,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있다.

첫 번째 작품은 <먹고 삽시다>이다. 이 작품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가 처음 마임 단독공연을 했을 때 선보인 작품이자 타이틀 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전은 길에서 저글링 등 다양한 공연을 하며 버스킹을 하던 광대가 경찰에 쫓기기도 하는 다양한 스토리로 기억하는데,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경찰 장면은 삭제되고 광대의 다양한 버스킹 공연만 진행된다.

흔한 저글링 공연이지만 그만의 익살은 여전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객석이 만석일지라도 몇 석 안 되건만 객석에서는 경탄과 웃음이 터진다. 벗어놓은 모자에 몇 장의 지폐도 들어온다. 오랜 휴식과 어느덧 들어버린 나이로 인해 가끔 실수도 벌어지지만, 광대의 익살은 그마저도 계획된 공연이자 유쾌함이다.

 
두 번째 작품 (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두 번째 작품은 이다. 필자의 기억 속 이 작품 역시 90년대 초반쯤 초연되어 그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타이틀 앞에 ‘Jazzy’가 추가되었다.

제목처럼 배경음악은 모두 Jazz로 채워진다. 한 사내가 오지 않는 그의 연인(?)을 기다린다. 그의 기다림은 청년-중년-노년시절 즉, 온 생에 걸쳐 계속된다. 모든 시절 그가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과 행동은 동일하다. 꽃다발을 들고 공원에 나타난 그는 설렘 속 기다리다, 지루함에 운동을 하고, 마침내 볼일(?)을 보고 그 자리를 떠난다. 청년 시절 그는 공원벤치마저 들어 올리는 괴력을 자랑하지만, 노년의 그는 몸을 가누기도 힘겨워 보인다. 떠난 후 공원 벤치에 남겨진 앙상한 꽃다발만 애잔하다.

판토마임에 있어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불리던 그의 몸짓은 애석하게도 이번 무대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의 다리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하기에 내심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아쉬웠지만, 그는 테크닉보다는 작품의 분위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테크닉에 집중하는 마임이스트도 많다. 하지만 담담하게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최규호 식의 세월 받아들이기를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는 클라운 마임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에서 왜 단순한 스토리에 Jazz를 강조했을까? Jazz는 영혼과 자유의 음악이다.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영혼만은 자유로웠던 이들에게서 시작된 음악이다. 그는 사고의 후유증과 세월의 무게를 함께 얹고 가야 하는 자신의 육체에,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열정(기다림)과 영혼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위로와 더불어…….

그의 이번 공연이 복귀의 인사인지, 아니면 마지막 인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공연 정보 어디에도 복귀나 은퇴를 암시하는 구절 하나 기술하지 않았다. 그저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이라는 제목뿐이다. 이게 그의 방식이다. 그는 때가 오면 또 공연할 것이고 때가 오지 않으면 기다릴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그렇게 세월을 기다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