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목 |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한국마임의 성지, 작은 극장 ‘돌체’ 박상숙 대표) | 조회수 | 12692 | |||||
| 글쓴이 | ClownMime | 등록일 | 2016.09.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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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그린 박상숙 대표 ‘광대’란 기예(技藝)를 업으로 사는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명칭이다. 그래서 광대 앞에는 항상 어리석다는 뜻의 ‘어릿’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어 ‘어릿광대’로 불리곤 한다. 그런 ‘광대’의 한자표기가 ‘넓을 광(廣)에 클 대(大)’라는 사실은 좀 의외다. ‘광대하다’라는 표현은 기실 ‘천지자연’ 쯤 되는 거창한 대상에나 어울리는 까닭이다. 어느 예술론 책에서는 그래서 ‘광대는 우주다’라고 의미를 확대해석하기도 한다. 온 우주를 품을 만큼 넓고 다양하며 변화무쌍한 예술가라는 뜻일 게다. 따지고 보면 그게 전혀 틀린 말도 아닌 것이, 광대의 기원은 먼 제정일치사회의 신굿과 맞닿아있을 뿐 아니라, 광대의 굿판은 광대무변한 자연의 변덕과 분노를 누그러뜨릴 유일하고도 중요한 의식이었을 터이기에 그렇다. 이렇게 하늘과 땅의 중재자였던 광대는 문명과 사회가 발전해가면서 신기한 재주나 코믹한 동작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배우로 그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마임 ‘광대에 의한 광대를 위한 광대 예술’로 세상에 등장 ‘흉내내다’, ‘모방하다’라는 그리스어 ‘미모스(mimos)'를 어원으로 하는 ’마임(mime)'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만으로 상황과 사물을 표현하는 현대판 광대예술의 대표적 장르다. 이탈리아 즉흥희극 ‘코메디아 델 아르테(commedia dell' arte)에 뿌리를 둔 마임은 팬터마임 작가이자 배우였던 ’장 루이 바로‘에 의해 피에로(Pierrot)라는 등장인물로 재창조 되면서 ’광대에 의한 광대를 위한 광대의 예술‘로 화려하게 세상에 등장했다. 현대적 마임은 희극적 요소가 많은 팬터마임과는 달리 진지한 신체언어의 표현예술로 다양하게 진화해가며 그 영역을 활발하게 넓혀가는 중이다. “1978년 ‘마르셀 마르소’의 첫 내한공연을 계기로 마임열풍에 휩싸이게 된 한국도 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마임의 선구자 유진규와 아시아 최고 마임이스트 최규호 등 굵직한 마임예술가들을 배출해 마임불모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1989년부터 1994년까지는 해마다 한국마임페스티벌을 개최할 만큼 성장했고 1994년 ‘일본 나가노 아시아마임크리에이션’에서는 우리 마임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죠. 지금은 굵직한 세계적 마임축제들을 주도적으로 운용하면서 세계 마임이스트들이 오히려 한국으로 몰려들 정도로 한국마임의 위상도 바뀌었어요.” 21년째 ‘인천국제클라운마음축제’열고 인천을 마임 성지로 올해로 21년째 ‘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를 열고 있는 작은 극장 ‘돌체’의 박상숙 대표를 극장 4층에 있는 극단마임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1979년 인천 중구 경동 싸리재고개 근처 얼음공장건물에서 처음 문을 연 돌체는 1983년 한국마임 2세대 최규호, 박상숙 부부 마임이스트에 의해 연극전용 소극장으로 탈바꿈, 2007년 4월 문학경기장 건너편으로 이전해 33년의 세월동안 한국마임의 성지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37년간 인천의 공연문화예술을 지켜 온 최장수 사설소극장으로 유명한 돌체였지만, 한 때 자금난으로 폐쇄위기에 내몰리기까지 했죠. 돌체를 살리자는 인천시민들의 여론에 호응한 정부와 인천남구의 지원으로 이렇게 남구로 옮겨오게 되었고, 저희 부부에게 운영권이 맡겨졌어요.” 지금 돌체는 2016년 10월 1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제21회 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인천 유일의 국제Art행사로 자리 잡은 이 행사는 1995년 최규호, 박상숙 부부를 매개로 세계 각국의 마임, 클라운마임, 넌버벌(Non-verbal) 아티스트들을 초청하면서 시작되었다. “‘클라운(clown)’이란 광대란 뜻이에요. 평생 세계를 무대로 판토마임과 마임을 공연해온 최규호씨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장르의 마임이죠. 말하자면 한국형 마임이라고나 할까요? 인간의 내면 이야기나 세상에 대한 풍자를 말없는 놀이형식으로 재미나게 풀어내, 조명이나 음향장치가 없는 공간에서도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클라운마임은 이제 전 세계 마임이스트들도 선호하는 어엿한 장르로 자리 잡았어요.” 비단 꼭 국제마임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돌체는 세계 각국의 마임 예술가들 사이에서 반드시 한번은 순례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마임성지로 인정받고 있다. 연말이면 이미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로부터 공연의뢰 E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해 다음해 공연스케줄이 동이 나버린단다. 그 동안 70여개 나라 수백 명의 공연자들이 돌체를 거쳐 갔다. 지금도 실험극 분야의 세계적 장인인 '렌조 베타(Renzo Betta)'의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다. 33년 돌체운영하면서 척박한 인천문화예술 기틀 다져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외갓집인 충남 온양과 본가인 경기 평택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5학년 때 다시 서울로 와 초, 중, 고를 졸업했죠. 대학진학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CF모델과 독서신문 표지모델 일을 했거든요. 영화판에 들어가 4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죠. 당시 배우 유지인 씨의 ‘O양의 아파트’가 히트를 칠 때였어요. 그러다 연극무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극단 ‘거론’에 입단했는데 거기서 극단 선배인 최규호씨를 처음 만났죠. 아니 마임공연이란 걸 생전 처음 본 거죠.” 말 한마디 없이 혼자서 몸짓만으로 한 시간 동안 신들린 듯 이끌어가는 최규호의 마임공연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떤 음성언어보다 강렬한 몸의 언어는 박 대표의 마음을 감동으로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극단생활 틈틈이 관객으로 객석에 혼자 앉아 최규호 선배의 공연을 훔쳐보곤 했는데 뜻밖에도 ‘함께 마임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최규호씨로부터 왔단다. “제가 이미 마임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터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그렇게 마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1980년, 대구시민회관에서 데뷔무대를 성황리에 마쳤죠. 그즈음에 최영준이라는 분이 ‘인천에 소극장을 만들자’고 제안을 해왔어요. 인천 중구 정동 기독병원 앞에 있던 얼음공장을 고쳐 씽어롱 무대로 운영해왔는데 그걸 다시 소극장으로 개조했죠. 최규호씨와 저도 함께 손수 객석을 만들고 청계천에서 조명기구를 사다 달았어요.” 그것이 돌체역사의 시작이었다. 최규호씨는 그 후 군에 입대했고 1983년 제대해 돌체를 인수했다, 물론 박대표와 함께. 3개월만 버텨도 천재라며 여기저기서 비웃었지만, 무려 33년간 돌체를 운영해오면서 척박한 인천공연문화예술의 기틀을 다졌다. “돌체를 운영하면서 오직 두 가지에만 집중하자고 속으로 다짐했어요. 첫째가 스타 만들기였고, 둘째가 제자 키우기였어요. 경동시대 24년 동안 최규호씨는 아시아 최고의 마임이스트로 국제적 네임벨류를 가진 스타로 성장했고, 돌체무대를 통해 수백 명의 실력파 마임예술가들을 제자로 키워내 세상으로 내보냈어요. 덕분에 불모지였던 한국마임시장은 수준이 월등해졌고 경쟁률도 치열해졌죠.” 2007년 학익동시대를 열면서부터는 콘텐츠의 다양화에 집중하고 한국적 마임인 클라운마임의 세계화에 힘을 쏟았다. 아울러 지역청소년들을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인천시민을 위한 사회복지교육사업도 활발하게 진행해나가고 있단다. 몸짓 하나가 천 마디 말보다 더 큰 울림 “박우섭 의원께서 남구청장을 하던 시절이었어요. 사전연락도 없이 청장님 혼자서 불쑥 극장에 찾아와서는 마임공연을 관람하셨어요. 극장직원들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공연이 끝난 후, 당시 공연했던 캐나다의 마임이스트 ‘키프키프 시스터즈’에게 불쑥 질문을 던지시는 거예요. ‘외국의 배우들은 돌체 소극장에서의 공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청장님의 돌발질문에 옆에 있던 저도 당황했고 극장직원들도 당황했죠. 그런데 키프키프 시스터즈는 주저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거예요. ‘인천의 돌체는 세계 마임의 성지다. 세계 최고마임전사들이 손꼽는 순례지 중 한 곳이다. 전설적인 선배들이 다녀갔던 뜻깊은 이 공연장에 우리 자매가 서게 돼 마임예술가로써 최고의 영광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힘겨웠던 지난 세월의 보상을 단번에 받는 기분이었죠.” 마임은 내면에 고여 든 삶의 쓰디쓴 노래를 몸짓으로 토해내는 연극이다. 우리 전통의 씻김굿과 일면 닮았다. 거기에 말은 부질없다. 그저 한 줄기 눈물이, 힘없이 떨군 고개짓 하나가 천 마디 웅변보다 더 공감을 불러오고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그런 예술의 성지가 인천에 존재한다는 것은 인천의 자부심이고 축복이다. 작은 극장 ‘돌체’가 연출해낼2016년 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가 기대된다. 글& 그림 유사랑 I-View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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