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수초등학교 학생시절,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 중의 하나는 유랑극단이었다.
극단 단원들은 트럭에 짐을 싣고 와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일방적으로 선택한 숙소에 보따리를 하나씩 부려 놓았다.
우리집 사랑채도 단골 숙소 중 하나였다. 보따리 주인인 연극인 부부가 이이들을 데리고 나타나면 할아버님은 헛기침을 한 두 번 하시곤 이웃집으로 자리를 피해 주셨다.
할머님은 평소 호랑이 같은 남편이 갑자기 양처럼 유순해지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그저 남자들이란---’하고 혀를 차셨다.
나 역시 단골처럼 찾아오는 연극배우 가족이 싫지 않았다. 그분들은 숙소를 제공해 준 데 대한 답례로 우리 가족에게 무료로 연극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유랑극단이 떠난 후 동내 친구들의 소꿉놀이는 단연 연극이었다. 우리는 각자 단역을 맡아 배우들의 연기를 흉내 내곤 했다.
그 여파로 학교에서 매년 가을에 펼치는 학예회 프로그램 중 연극이 가장 인기를 끌었고 전교생의 우상이 되될 수 있는 연극주인공에 발탁되는 것이 큰 소원이었다.
지난해, 인천시약사회 회원들에게는 연극공연이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공지영 작가의 작품인‘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연극 주인공이 여약사였기 때문이었다.
30여 년 전, 서울의 모 극단은 부산에서 발생한 약화사고를 주제로 연극을 공연한 적이 있었다.
약을 복용하고 사망한 환자와 약을 조제한 약사의 상반관계에서 억울한 약사의 입장을 대변한 내용으로 많은 약사들의 관람을 기대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반면에 돌체 소극장의 박상숙 대표는 연극의 저변확대 방안으로 시민 배우를 모집해 공연을 하는 결정을 내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덕분에 직업상 좀처럼 약국을 떠날 수 없는 약사들은 돌체 소극장을 찾아가 배우로 변신한 동료 약사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문학동에 자리잡고 있는 돌체소극장에 입장하는 순간, 과거에 경동 싸리재 골목길을 다닐 때마다 ‘참 이상한 이름의 극장도 다 있구나!’하며 무심히 지나치며 연극 공연 한 번 관람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물론 연극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추어 시민 배우의 대사 발음과 연기 표정이 하나같이 불만투성이였겠지만 출연 배우와 친지 등 특별관계로 입장한 관객들에겐 자부심이 뿌듯한 공연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약사회원들과 가족들은 인천세계도시축전 행사 기간 중에 열린 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에도 관심을 갖고 관람할 수 있었다.
‘클라운마임’이란 어릿광대의 무언극을 뜻하며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스트리트 마임(Street Mime ; 길거리 무언극)이라고 부르는 공연문화로 그 역사가 매우 깊다.
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는 원래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마임협회가 개최했던 <한국마임축제>에서 시작된 국내행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4년 극단 마임의 대표 최규호, 박상숙이 일본의 국제 마임축제인 ‘나가노 아시아마임크리에이션’에 참가해 한국의 마임 수준을 인정받으면서 국제행사로 발전했다고 한다.
마침내 1995년, 인천에서 제1회 국제클라운마임축제를 개최하면서 국내 무언극 배우는 물론 외국 배우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인천에서만 열리는 축제로 못을 박았다.
아직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이지만 거리축제를 통해 외국의 색다른 공연예술을 접할 수 있는 이 행사는 인천의 무형적인 문화유산이며 인천 시민의 자존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인천은 물론 한국의 연극계에 큰 획을 그으며 연극의 전도사 역할을 해 온 ‘마임’이 돌체 소극장 운영권에서 밀려나며 인천의 연극문화가 법정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돌체’란 이탈리아어(dolce)로 ‘부드럽게 또는 우아하고 아름답게’란 음악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인천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저해시키는 분쟁이 정치 논리가 아닌 전문성에 입각해 부드럽고 우아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해 본다. 돌체소극장의 주인은 연극을 사랑하는 인천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기사출처: 구글-ⓒ 남동신문(http://www.namdo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