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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누가 ‘돌체의 둥지’를 앗아갔을까
박상숙 작은극장 돌체 공동대표
인천에서 가난한 연극인으로 30여 년을 살았다.
최근 3년은 문학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돌체’란 이름으로 관객들을 만나 왔다.
하지만 이제는 작은극장 돌체를 떠나야 될 상황이다.
위탁기간 만료가 표면상 이유지만 과정에서 드러난 석연찮은 부분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그래서 극장 외벽 대형 간판에 연극홍보 대신 대자보를 걸고자 한다.
지나치는 행인들을 향해 차기 공연, 행사 일정을 홍보하는 홍보판으로
일년에 여섯 번 내지 일곱 번은 옷을 갈아 입던 작은극장 돌체의 얼굴에 말이다.
실체가 없는 지자체와는 싸울 수는 없다. 거기엔 조직이 있을 뿐이다.
또한 싸운다 한들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허물만 들춰내야 하는 아픈 과정일 뿐이다.
1985년 4월에 태어난 내 딸은 인천시 중구 경동 소극장 돌체가 고향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의 다큐를 가질 만큼 예술 환경 속에서 자랐다.
연극과 마임, 클라운마임 축제를 통해 국내외 공연 및 연출, 예술강사로 일한다. 딸 아이를 포함해
돌체에서 배출한 배우들은 팀을 조직해 마임과 난타를 혼합한 넌버벌 공연과 TV출연, 거리공연 등으로
서울시장상을 받기도 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보금자리를 빼앗기는 그들에겐 남은 건 크나큰 아픔과 시련이다.
작은극장 돌체를 이끌어온 극단마임은 1월이면 신년 축제 규모와 참가자 초청, 신청서 등으로 분주할 때다.
하지만 지금은 기획서조차 확정 짓지 못한 채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야 할 형편에 놓여 獵?
해가 바뀌었는데도 홍보판에 다음 일정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작은극장 돌체의 수탁자 선정날이 30주년 행사날이었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잘못된 판단을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담당 공무원의 행정력 앞에
당황했고 뜻 모를 서글픔과 혼란만이 있었다.
2009년 공연예술 진흥 기본계획을 들여다 보면
‘공연예술 정책의 기조 변화에 공연예술의 다양화에 따라 예술정책의 대상범위 확대와
정책의 형성과 집행에 있어 민간부문 및 지방정부와 역할 분담 상호협력 필요성 증대’라는 구절이 나온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최대한 전문가 그룹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일 터다.
또 지원시스템을 구축해 국내 공연예술 유통 활성화를 시키고 나아가 국제 경쟁력을 길러
장기적으로 공연예술의 산업적 발전 가능성을 모색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행정은 여전히 시대적 기조와도 다른 행보를 갖는다.
돌체를 성공한 공연장으로 만들기엔 3년은 촉박했다.
문화 환경이 변함에 따라 장기적인 콘텐츠와 인천 전지역을 포함하는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도 시민참여 프로젝트나 오피니언 페스티벌을 벌였다.
시민참여 프로젝트는 벌써부터 신청자가 생겨날 만큼 호응도가 높았다.
일년을 돌아 보면 돌체에서 국제 행사가 둘, 정기공연 형태가 넷, 예술 교육이 2개 그룹 이상,
시즌별 방학 특강 등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이젠 둥지를 잃었다.
지난 3년, 정확히 2년 7개월간. 30년처럼 뛰었지만 다시 제자리다.
사람을 찾아 다니지 않는다는 주장은 편견에 불과하다.
조금이라도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여주면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잡고 매달렸다.
딸린 식구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이 떠져 숱한 날을 창가에서 서성거렸다.
운영은 내게 또다른 도전이었다.
돌체를 구성한 극단마임 식구들은 현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가난과 맞서 있다.
30여 년 전 다락방에서 먹고 자고 나만 참으면 헤쳐 나갈 수 있는 가난과는 분명 다르다.
그들이 없으면 시행될 수 없는 콘텐츠들이 있다. 지구촌 예술가들도 우리의 다양한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그랬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그러니까 너무 염려 말라고.
기사출처 ㅣ ⓒ 경향신문 & 경향닷컴, 2010-01-19 |